문소영 기자 전시에선 백자의 다채로움이 빛난다.
그 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1894년 여름』에서 조선의 공예품 수준은 일본은 물론 동남아와 비교해도 조악한 것이 많다고 적었다.
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한데 우리는 몇몇 조선 도공의 이름을 알고 있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더 중앙 플러스관점의 관점 +영수회담 뒤 ‘특검법 대치‘강대강 정국 명분이 없다채상병 대치 반복된다오프로드 정치의 시작정말 오랜만이다.일본이 조선을 끔찍하게 파괴한 전쟁이 끝났을 때.
주자학 근본주의를 따르면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자기(瓷器).그러나 공산정권은 그 희망까지 허락지 않았다.
정직과 정의를 믿고 사는 군 출신의 큰아들.복잡한 인간사를 가장 다양하게 서술하였기 때문일 게다.
매춘부의 방에 들렀던 라스콜니코프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 앞에서 나는 하느님은 모르겠으나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무릎을 꿇는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그 후에는 그 당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차지한 『부활』까지 읽었다.